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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2-02-18

조회수40,160

제목

(도전한국인52) 제주도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

일본군주둔 지하요새 원형보존 '위기봉착'

<단독 인터뷰> 제주도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

 

 

‘우공이산(愚公移山)’평생 땅굴을 파며 아버지의 약속을 지킨 평화박물관의 이영근 관장(59세). 이 관장은 도전과 불굴의 한국인이다. 특히 일본군에 강제노역으로 2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던 아버지의 눈물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반복되는 증언에 20년 동안 번 사재를 털어 민간 박물관을 열었다. 제주도에서 이삿짐 화물트럭 운전을 할 때에 역사적으로 소중한 유물들을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 한 점씩 땀 흘려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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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브레이크뉴스

 

자비를 들여 2004년 개관한 제주평화박물관에는 국가기록원 등록 280권의 자료와 유물 등 2천여점이 전시·보관돼 있다. 제주도 모슬포 북쪽 한경면 청수리 평화마을에 평화박물관(www.peacemuseum.co.kr)은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미로형 지하요새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박물관 안에는 영상관과 전시관이 있어 당시 작업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과 방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을 만든 장본인은 기관이 아닌 개인이다. 아버지가 직접 일했다는 땅굴현지를 찾아 그 땅을 매입하고, 모든 재산을 들여 참으로 어렵게 마련한 곳이 이 박물관이다. 전세버스 기사로 모은 꽤 많은 돈, 그리고 은행 빚 수십억으로 그 땅을 사고,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가 강제노역을 통해 파놓은 땅굴을 탐사하고 땅속에 묻힌 철제 쓰레기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역사평화박물관은 그 남자의 뚝심으로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은행 빚이 점차 커져서 수십억에 이르게 되었고 여타 이유로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점차 줄어서 이자조차 갚지 못하여 집도 잃고 가족들이 모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위기가 온 것이다. 너무 고민하여 그의 윗 치아가 모두 빠져버렸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그는 우선 가족들을 살려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일본으로의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를 만나보자.

 

- 왜 박물관을 일본단체에 매각을 하려는지?

▲오죽하면 그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박물관을 매각하려 하겠는가. 개관과 운영, 시설 확장 등에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 자금 압박이 심하다. 하지만 사설 박물관이라 제주도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지 못할뿐더러 국내 기업이나 단체와 접촉해왔으나 매입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제주평화박물관은 박물관의 자금난이 심해 개관 초기부터 매입 의사를 밝혀온 일본 모 단체와 3차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만일 최종 계약 전에 박물관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 기업이나 단체가 나타나면 일본 측과의 매각을 재검토하고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하겠다.

 

- 왜 일본에서 평화박물관을 사들이려고 하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가 없다. 다만 예측하건데 일본 측이 박물관을 사들이고 나서 군국주의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데 이용할 것 같다.

 

- 평화박물관이 자금난에 어렵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 이자 상환에 대한 문제와 관광객 감소가 가장 큰 이유이다. 비 은행권에서 차입한 금액이 커지다 보니 이자를 갚는데 허덕이고 있다. 최근 3년간 구제역, 신종플루 등으로 학생 관광객들이 1/3 수준으로 줄었다. 또한 제주도 지정 도립 공원과 박물관들이 무료 개방으로 인하여 유료로 운영되는 평화박물관의 관람객이 줄은 이유도 있다.

▲ 평화 박물관 ©브레이크뉴스

 

- 평화 박물관의 역사적 가치는 무엇인가?

▲지난 2004년 개관한 제주평화박물관에는 국가기록원 등록 280권의 자료와 유물 등 2천여점이 전시·보관돼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통보' 등 희귀 자료도 다수가 있다. 신호용으로 쓰였던 사이렌은 만들어진 지 8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쨍쨍한 소리를 내고,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에 썼던 토지 측량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중 본토를 지키기 위해 제주에서 최후의 옥쇄를 할 목적으로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 구축한 대표적 전쟁유물로 평가된다. 따라서 후대들의 민족의식과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를 돌아보는 데 이만큼 훌륭한 역사적 자료가 없을 것이다. 최근 자료로는 연평도 포격 당시의 포탄도 전시 중이다.

 

- 직접 땅굴을 파신 진지는 어떤 곳인가?

▲전체 길이가 2㎞에 이르는 미로형 요새인 가마오름 땅굴진지이다. 3층 계단 형식으로 입구만 33개에 이르는 땅굴진지는 전체의 15%인 340m만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생존자 증언을 토대로 간부회의실 등 공간과 당시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사실감을 주었다. 길이 2km에다가 세 개의 층으로 된 구조, 출구는 서른세개나 된다고 한다. 이 거대한 땅굴 진지는 가마 오름은 1945년 일본군이 만든 지하요새인 것이다. 당시 제주도 인구 20만명 중 7만5천명이 일본군이었다. 이 일대 역시 가마오름을 중심으로 일본군들이 쫙 깔려 있던 지역이다.

 

- 사재를 들여서까지 박물관을 만든 목적은?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알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평화박물관은 준비기간만 15년에 소요자금이 35억원이 든 곳이다. 주변에서 워낙 반대가 심해서 처음에 저도 망설였다. 이곳에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에게 징용돼 가마오름 땅굴 진지내에서 군량미 수송 노역에 시달렸던 아버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박물관 설립을 하게 되었다.

 

- 동굴진지들을 누가 건설했는지?

▲ 일본군은 당시 제주도민을 무차별적으로 차출하여 비좁은 갱도를 파서 산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혹독한 노역을 시켰다. 거친 주먹밥 한 덩이로 연명하며 곡괭이로 땅굴을 파는 조선인 노무자들은 짐승 취급을 받은 곳이다. 3인 1조가 맨손에 곡괭이와 삽만 들고 땅굴을 파는데, 하루에 할당된 2m를 파지 못하면 잠도 재우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릴라치면 가차없이 채찍이 날라온 것이다. 이게 다 나라 잃은 서러움 아니겠는가. 우리 아버지도 그곳에서 일했던 징용자 중 한 명으로, 그곳에서 2년반 동안의 지옥같은 노역 때문에 평생 두 눈이 먼 채 살 수 밖에 없었다.비록 미군에 항복함으로 최후의 결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일본이 끝까지 전쟁을 벌였다면 아마 제주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형과 제주도민 소수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 일본인들도 이곳을 찾았는지?

▲ 전에는 외국인 방문객중 일본관광객이 많았다. 일본 관광객중 일본 침략이 무모한 전쟁이고, 전쟁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간다. 수학여행으로 온 학생들이 한국 사람이 왜 일본을 미워하는지 이해를 한다고 하였다. 내가 2008년 12월에 직접 일본의 마쓰시로 고등학교를 방문한적도 있다. 마쓰시로 교장선생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교육당국에서 못가게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교장 선생은 지혜롭게 학부모들에게 제주도와 오키나와 중에서 설문조사를 통하여 제주도를 선택하도록 하게하여 결국 평화박물관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0년부터 일본 수학여행이 중단되었다 확인결과 일본 교육기관에서 중단 지시를 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까지 찾아와 “태평양전쟁은 무모한 전쟁이었고 바보짓이었다”는 감상문을 남겼다.

 

- 이곳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 있는 때는?

▲일본 관광객들이 일본이 저지른 막중한 죄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방명록에 쓸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 평화 박물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잊혀진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기에 체험을 통한 역사박물관은 의미가 있다. 방문하는 학생들은 짧은 시간 안에 영상과 관람과 체험을 통해서 공감을 갖게 한다. 힘이 없는 평화는 희망일 뿐이다. 강한 의지와 실천 현재 체험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평화의 소망쓰기는 현재 5키로미터 정도 된다. 언젠가는 휴전선 255키로 될 즈음에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다

 

-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눈멀고 가난한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겼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조차 하지 못했다. 뒤늦게 학교의 잡일을 해주며 중학교를 마쳤다. 아무 죄 없는 아버지는 광란의 전쟁이 낳은 희생자이다.

 

- 제주도에 일본이 판 땅굴 진지는 얼마나 되는지?

▲일본군이 일본 본토를 미군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에 만든 동굴은 대략 79개에 달하며, 제주시 지역은 물론, 서귀포, 한림, 모슬포, 성산, 표선, 추자까지 제주도 전역에 산재해 있다. 이중 가장 큰 요새가 평화기념관이 있는 가마오름 땅굴이다. '제주 가마오름 일제(日帝) 동굴진지'는 2006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308호가 됐다. 사실 일본은 1926년부터 제주를 본격적으로 군사 기지화 시켰고,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제주를 가미가제의 발진기지로 만든 것 같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출격한 일본군 항공기는 중국의 난징을 연 600기의 항공기로 36회나 공습하였고 이때 투하된 폭탄만 300톤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영근 관장의 선친은 살아계실 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아들아, 내가 살았던 세상은 컴컴하고 음습한 땅굴 요새였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때 우리 제주도를 저들의 군사기지로 만들었단다. 일본군에게 끌려간 나는 두더지처럼 밤낮 땅굴을 팠지. 그러다 그만 눈이 멀어갔다. 아들아, 바라건대 너는 이 못난 아비가 살았던 그런 세상을 살지 마라.”

 

정부의 지원 없이 사재를 털어 평화박물관을 운영해오려는 이영근 관장은 이제 지쳐만 가는 것 같다. 이제 누군가는 평화를 위해서 역사적인 박물관을 지켜내줘야 한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3.1절에 아이러니하게 일본에게 박물관을 매각한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우리도 모두도, 당신도 그렇게 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단결하고 노력해야 한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의 뛰는 가슴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다행히 박물관 매각 관련 기사가 보도되어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서 응원의 메시지들이 이어지고 있다. 응원이 일시적 메아리로 그치질 않기 기대한다. 다음은 제주평화박물관 이영근관장이 보내온 편지문 전문이다.

 

제주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이 보내온 편지문<전문>

 

안녕하십니까? 제주평화박물관 관장 이영근입니다. 그동안 저희 박물관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신 분들께 너무나 죄송한 일이 생길 듯 하여 고민 끝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향기로운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는데 이곳 제주평화박물관에서는 아직 찬 바람만 가득한 겨울입니다. 이 곳 제주평화박물관은 아버지와 저 2대에 걸쳐 일본군 지하요새를 복원하고 각종유물 및 자료를 수집하여 ’04년 2월에 개관한 박물관입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박물관이 세워진지 2년 후인 ’06년에 국가의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308호)로 지정 받았고,현재까지 일본군 지하땅굴을 지속 복원하고 박물관을 확장하며 오로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청소년들의 나라사랑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장소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 하에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문화재를 개인이 관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자본이 필요하였기에 그동안 정부의 관계부서와 기관은 물론, 관련있는 기업과 독지가까지 찾아다니며 국가문화재인 제주평화박물관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호소하였으나, 그 어느 곳도 자금난을 해결 할 수 있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혹스럽게도 일본에서수차례 매도를 요청해왔었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은행 빚이 점차 커져서 수십억에 이르게 되었고 여타 이유로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점차 줄어서 이자조차 갚지 못하여 집도 잃고 가족들이 모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고민한 나머지 제 윗 치아도 모두 빠져버렸고, 아랫 치아도 전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저는 우선 가족들을 살려야 하겠기에 일본으로의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의 현장인 문화재를 일본으로 매각한다는 죄의식으로 버티면서 일본으로 매각하지 않기 위해 뜻이 있는 분들의 기부금이나 정부나 지자체 및 기업에 매각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하여 노력하여 보겠지만, 이런 상황이면 그리 오래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조만간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시더라도 이러한 저를 질타하시고 조금이나마 이해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죄송하며... 감사합니다...-제주평화박물관장 이영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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