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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3-06-07

조회수48,190

제목

(도전한국인49) “팔이 없어서 오히려 역동적인 그림이 나온다” -화가 석창우 화백

“팔이 없어서 오히려 역동적인 그림이 나온다”

 

도전 서울인 17- 의수 화가 석창우 화백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그는 TV 인기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붓 한 자루로 가수들의 춤사위를 마치 연속 촬영하듯 화선지 위에 옮겼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야? 우리나라에 저런 화가가 있었나?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 앞에서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악셀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 극찬을 받은 석창우 화백이다.

사실 석 화백은 1984년 10월, 전기 기사로 일하던 중 2만2,0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29세의 나이로 10여 차례의 수술을 거친 후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던 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 아들의 뜬금없는 말 한 마디에 처음으로 펜과 종이를 잡았다. 그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다. 그때까지는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생각도 못했다. 붓을 잡은 이후로 나날이 실력이 늘어, 이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넓디넓은 화선지 한가득 보는 이의 가슴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인체를 그려 넣는다. 날개 없이도 새처럼 날아서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나보다. 두 팔을 가지고 남들처럼 살던 옛날보다 팔은 없지만 신이 주신 재능을 찾아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지금이 더욱 행복하다는 석창우 화백, 그의 운명 같은 그림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떤 것에 도전 하였는가?

▲세계 최초로 서예크로키라는 화법을 만들었다.

 

- 그림과 서예를 하게 된 계기는?

▲나에게 아이 둘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 아이들에게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빠보다 팔 없이도 뭔가를 하는 아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어느 날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동물도감을 펴놓고 새 한 마리를 그려줬더니 가족들 반응이 꽤 괜찮았다. 그 때 속으로 “그래, 이거다” 싶어서 제대로 배워보려 화실을 찾아갔는데 어디서나 팔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거절당했다. 그걸로 포기할 순 없어서 생각 끝에 여러 색을 쓰지 않고 먹으로만 하는 수묵화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사군자를 배우려고 처제의 소개로 원광대 여태명 선생님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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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시작을 하였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여태명 선생님을 찾아간 게 1988년 3월이다. 그때부터 서예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도 처음엔 힘들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내가 포기할 때 까지만 가르쳐 달라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 첫 한 달 정도는 나에게 맞게 글씨체를 변형시켜서 가르쳐 주시더니 한 달 지나고 나자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하더라. 그렇게 서예의 전 분야를 섭렵하던 중에 우연히 누드 크로키를 강의 하는 김영자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인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원래 누드크로키는 연필로 인체의 외곽선만을 그리는데 나는 서예를 해왔으니 그 윤곽 전체를 일필휘지로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동양의 그림 재료인 먹만으로 작업을 하다가 생소한 연필이며 목탄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그리기까지는 5~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성된 것이 바로 서양의 누드크로키와 동양의 서예를 접목한 서예 크로키다.

 

- 도전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가장 중요한 건 배우자인데 아내에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가 생활은 책임질테니 한 번 제대로 해보라고 하더라. 이 모든 게 아내가 전적으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매스컴에 나간 적도 있다던데...

▲SBS <스타킹> 제작진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출연을 부탁했다. 처음엔 사양하다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보았더니 출연하는 사람들의 포즈가 무척 다양하더라. 그 포즈들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연했다. 올 초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실사단이 왔을 때 그들 앞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것을 보고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에도 참여를 부탁 받았다. 개막식 날 내 작품들을 가지고 실제 움직이는 것 같은 동영상을 만들어 상영했다.

 

- 국내·외 전시 경력도 많을 것 같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30회 개인전을 했고 그룹전은 220회 정도를 했다. 미국, 독일, 중국,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전시회를 펼쳤다.

 

- 도전을 통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외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팔이 있을 때는 그냥 직장생활을 했는데 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팔을 잃은 후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는 이 일이 나에게 잘 맞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더 즐거운 삶이 된 것 같다.

 

- 도전을 하는데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처음에 붓을 잡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붓대는 둥글기 때문에 의수로 잡으려고 하면 자꾸 붓이 도망가서 초기에는 붓대에 구멍을 뚫어서 끼워 잡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일반 붓으로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걸 찾으면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안 맞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니까 괴롭고 힘든 것이다.

 

 

-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꿈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처음 전시를 시작할 때부터 해외에도 내 작품을 많이 알리고 싶었다. 보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개인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상모돌리기, 살풀이, 사물놀이, 관현악 연주 등 우리의 전통공연의 멋진 포즈들을 그리고 싶다.

 

-팔이 없다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인생에서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거나 슬럼프를 겪었다거나 그렇진 않다. 팔을 잃고 나서 병원에 일년 반 정도 있었고 그 후 바로 그림을 그리게 되어서 지금까지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내 작업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이라든지 역동성은 오히려 팔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마음에서 표현하라고 하는 것을 몸으로 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지 못하는 강한 선이 나오는 것 같다. 팔이 없음은 단점인데 그로 인해 좋은 선이 나오는 건 장점이다.

 

-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남자들은 고스톱 치고 여자들은 음식하고 있던 어느 명절날, 내가 낄 곳이 없어 아이들 놀고 있는데를 갔더니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발라달라고 했다. 그러다 한 신문사 인터뷰 기사에 내 빨간 발톱이 나왔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했다. 그때부터 계속 칠하고 다닌다. 지금 생각하니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게 다 아이들 덕분인 것 같다.(웃음)

 

-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았다고 생각되면 과거의 것은 미련 없이 비워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나 머리도 한정된 공간인데 옛날 것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과감하게 원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해도 좋겠다는 걸 만났으면 기존의 것을 싹 버리고 하면 된다. 그건 용기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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