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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3-06-06

조회수39,500

제목

(도전한국인41) 음대 교수도 아닌데 수업시간에 노래를 한다고? -교수’ 박재진

음대 교수도 아닌데 수업시간에 노래를 한다고?

도전 서울 人 7- ‘노래하는 교수’ 박재진 씨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 듣는 이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어 노랫말에 ‘사랑’이 들어가는 노래는 모두 찾아서 불러왔다. 그러다보니 음대생들도 모르는 숨은 우리 가곡까지 발견해 알리고 있다. 워낙 많이 부르다보니 직접 작사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수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에게는 노래가 곧 인생이다. 33년을 은행에서 근무하며 고객들을 위해 노래한 것이 500회가 넘으며 교수로서 강단에 서기 시작한 2006년 8월부터는 학생들을 위해 매 수업마다 감동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박재진(65) 씨를 만났다.

 

- ‘노래하는 지점장’, ‘노래하는 교수’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 현재 남서울대학교(교양과정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노래하는 교수’라는 별명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강의 열심히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격려의 마음을 담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얻게 된 것이다. 학생들이 처음엔 어리둥절해 했지만 학기가 끝나갈 무렵엔 매우 좋아했다. 예전에 은행에 재직할 땐 고객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직접 노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매스컴에 소개 되면서 ‘노래하는 지점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은행원을 그만두고 교수가 된 후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학생들의 감동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 학창시절 노래에 특기가 있었나?

▲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노래지도를 많이 해 주셨다. 학예회 때 독창을 하기도 하고, 아무튼 어릴 때부터 노래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 대학 때는 음악부장으로 합창동아리를 이끌었다. 어릴 때 끼가 좀 있었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가수가 못 돼서 후회한 적도 없다. 노래는 그냥 내가 좋아해서 한 것이다. 그냥 내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노래를 찾아 불렀다.

 

- 노래하는 지점장과 교수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 대학시절 합창부 활동이라 생각된다. 고려대에는 음대가 없어서 합창부가 모든 학내 음악활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합창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되어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악보 보는 법, 지휘법 등도 훈련이 되어 대학 4년 동안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이 형성되었다. 특히 남성4중창단 활동을 통하여 무대에 서는 것을 익혔다.

 

- 노래 시작은 언제부터이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 공식적으로 노래 부르기 시작 한 것은 기업은행 서울 삼성동 지점장 시절부터였다. 그 때 지점 주변이 전부 아파트였고, 은행의 고객층이 주로 여성고객들이어서 기존의 홍보 방식에서 탈피한 ‘문화마케팅’을 영업방침으로 삼았다. 고객들이 왔을 때 그냥 은행 업무만 보고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문화를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3시의 데이트’라는 코너를 마련하였다. 그 때 내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음악회는 첫 1년 동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3시마다 열었다. 1994년 5월부터 그린하모니클럽을 창립하여 합창활동을 시작하였다. 삼성동 지점 이후에 서울 송파지점, 대구 송현동지점, 서울 문래동지점까지 4개 지점에서 근무했다. 내가 지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 음악회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총 503회, 은행원과 고객이 함께 출연하여 고객을 위해 음악회를 열었다. 송파지점장 시절부터는 매일 하던 음악회를 ‘수요데이트’로 이름을 바꾸어 일주일에 한 번 열었다.

 

- 현재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노래하는 건 어떤가?

▲ 누가 봐도 독특한 일이다. 음대도 아닌 일반 대학에서 그것도 음악수업도 아닌데 교수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는 건 흔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노래를 하는 이유는 은행지점장 시절에 노래를 했을 때 많은 고객들이 감동을 받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도 그런 감동을 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라도 자꾸 듣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기뻐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수업을 처음 들어갔을 때 신기했는지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학기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이 내 뜻을 이해하게 되고 그 때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시험 보는 날은 노래를 안 하는데 학생들이 “왜 노래 안 하시냐. 해 달라”고 해서 부른 적도 있었다.

 

- 현재 대학교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나?

▲ ‘취업과 진로’, ‘인간관계론’ 2개의 과목을 맡고 있고 각각 60명 정원인데 내 수업이 쉽지 않은 편인데도 인기 수업으로 소문이 났다.(웃음) 교양 수업이라서 전공과 학년이 다양하다. 주입식 수업이 아닌 발표와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고등학교 때까지 일반적인 학교수업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한다. 계속 토론시키고 발표시키고 하는 게 싫어서 다른 수업으로 옮기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학기 말에 설문지를 읽어보면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부담스러웠지만 자꾸 훈련을 하다 보니 성취감도 생기고 얻는 바가 많았다고 고마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발표와 토론,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훈련이 된다.

 

- 노래를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만약 노래를 안 했으면 아이들이 내 수업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견디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수업 시간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테니 2시간 동안 수고 많았다는 의미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특히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즐겁고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라고 말이다.

 

- 은행에서 노래공연에 고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 고객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기업은행 직원들의 진정어린 서비스에 고객들이 찬사를 보내주었다. 노래하는 시간을 기다렸고, 노래 끝나면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하고 가기도 하고, 어떤분은 가슴을 꽝꽝 때린다고 하였다. 특히 음악인들의 격려와 참여가 인상적이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하성호 박사와 성악가 베이스 권순동 교수의 협조는 파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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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어떤 노래를 불렀나?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 가곡, 동요, 팝송, 가요, 오페라, 아리아 등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노사연의 ‘만남’으로, 음악회 첫 날 부른 노래였다. 학교에서도 수업 첫 날은 ‘만남’을 부른다. 그 외에도 ‘사랑의 노래’를 애창한다. 천상병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한 우리 가곡인데 시가 정말 좋다. 직접 작사하고 이강산 교수가 작곡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노래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는?

▲ 2000년 1월 15일에 막을 올린 자선기금마련 ‘제1회 그린하모니 콘서트’이다. 영산아트홀에서 자선음악회를 했는데 사회를 맡은 황선숙 아나운서, 축시를 낭송한 고은정 성우, 소프라노 오현미 교수가 자원봉사로 출연하였고, 하성호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인기 보컬 ‘샵’의 특별무대가 펼쳐졌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매년 영산아트홀에서 독창했는데 그 기억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또한 2001년 1월 30일에 기업은행 문래동지점에서 열린 503회째의 ‘라스트 콘서트’는 지점장직을 영원히 떠나는 고별음악회가 되어 기억에 남는 콘서트였다.

 

- 노래를 통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지?

▲ 노래는 인생이다. 감동을 주고받는 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나 혼자 즐기던 노래였다면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과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노래 한 지가 공식적으로 17년이 되는데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도 있다. ‘노래하는 지점장’, ‘노래하는 교수’는 박재진이라는 사람의 브랜드다.

 

- 혹 가족 중에서 음악을 하는 분이 있는지?

▲ 가족 중에는 딸 소윤이가 노래에 소질이 있는데 교회에서 성가대 봉사를 하고 있다. 딸은 지금 나의 일을 도와주고 있고 아들 종덕이는 프랑스계 컨설팅회사의 시니어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데 최근 합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가족모임 때엔 음악회까진 아니더라도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아내는 내게 행운이다. 은행 대리시절에 중매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었다.

 

 

- 도전하는 것이 삶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지?

▲ 어떤 일이건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늘 긍정적으로 살아왔기에 도전에 성공했을 땐 물론 기쁨이 있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 모든 것이 과정이고 나에게 열정이 있는 한 나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기에 고통이 따라도 감내할 수 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 우리사회에 자원봉사자로 계속 기여하고 싶다. 기득권층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나 지위가 다른 사람의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어서 이를 깨우쳐 주고 싶다. 희망과 기쁨을 만드는 사랑의 노래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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